전체메뉴

아이틴뉴스칼럼

HOME > 칼럼

[이주영 하노이살이]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법

기사승인 : 2026-03-06 14:09 기자 : 편집부

하노이 생활 3년 차쯤이었다. 낯설음은 익숙함으로 바뀌어 이 도시도 제법 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아이 손을 잡고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을 찾았다. 태권 공연이 열린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힘찬 동작이 음악과 함께 펼쳐졌고,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그 모습을 보며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 흘러나왔다. 아리랑. 익숙한 멜로디가 공연장을 채우는 순간,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조용히 닦아 보려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뒤로 서러움은 사소한 순간마다 찾아왔다. 마트의 어정쩡한 김치 맛도, 아이가 흥얼거리는 한국 동요에도, 유난히 붉은 저녁노을에도 마음은 젖었다. 

“언니, 한국이 그리운가 보다.” 그 말에 나는 내 감정이 향수병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한국식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노이에서 엽기떡볶이를 즐기고, 치킨에 삼겹살을 먹고, 맥주를 따고, 한식당에선 김치찌개만 먹었다. 20분 거리에 생긴 목욕탕을 찾아가 식혜를 마시고 달걀을 까 먹었다. 익숙함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덮어보려 했다.

한국으로의 휴가도 점점 길어졌다. 2주가 한 달이 되었고, 친정집 밥을 먹으며 “역시 한국이최고야.”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시 하노이로 돌아오면 마음은 어김없이 가라앉았다. 한국에서 채워왔다고 믿었던 것들이 금세 빠져나갔다. 

한인 아줌마들과의 모임은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아이만 간신히 챙긴 채 낮잠으로 하루를 버텼고, 밤이면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혼자 맥주를 마셨다. 그 시간이 거의 2년 가까이 이어졌다.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서운했고 우리는 말 한마디로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했다.

향수병이 어느새 가면을 쓴 우울로 변해가고 있었다. 당시 하노이에는 마음을 털어놓을 곳도, 쉽게 찾아갈 정신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하노이 도심의 재래시장들을 찾기 시작했다.

시장은 늘 뜨겁고 소란스러웠다. 쌀자루를 나르는 사람들, 과일을 손질하는 손놀림, 아이를 업은 채 흥정을 이어가는 상인들. 작은 선풍기 하나로 땀을 식히며 하루를 버티는 모습들. 처음엔 그들의 치열함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저 사람들도 저렇게 사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라며 말이다. 하지만 곧 알았다. 남의 고단한 삶과 비교해 나를 채찍질하는 방식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건 나를 들여다보는 대신 회피하는 일이었다.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왜 예전 같지 않을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 나를 향한 질문들은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자책에 가까웠다. 답을 찾기보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뿐이었다. 

나는 잡생각이 줄어들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더위를 핑계 삼아 땀을 흘리고, 일부러 다리를 아프게 했다. 잡생각이 줄어들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보였다. 그들의 삶이 대단해 보였던 이유는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하루를 묵묵히 이어간다는 점이었다. 고단함 속에 그들이 머금고 있던 웃음은 대단하고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깨달았다. 장소를 바꾸고 음식을 바꿔도, 정작 나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멀리 외국으로 왔다. 스스로 한 선택이었지만 미처 헤아리지 못한 상실이 있었다. 나는 남편과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꿈꿨다. 그러나 경력 단절이란 현실에 멈춰 선 나를 마주하게 됐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성장형 인간이었고, 작은 성취라도 확인해야 숨이 쉬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왜’라는 질문 대신 ‘무엇’으로 질문의 방식을 바꿨다. 성장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붙이지 않기로 했다. 전업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작은 목표를 주기로 했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덜 화내기. 미뤄둔 은행 업무 하나 처리하기. 저녁에 가족과 치킨 시켜 먹기. 딱 하나만 지켜도 그날은 잘 살아낸 성공적인 하루로 쳤다.

처음엔 우습게 느껴졌다. 이렇게 소박한 걸 목표라고 부를 수 있나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루 하나를 지키는 날이 쌓이자 나는 조금씩 다시 서기 시작했다. 대단한 직함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붙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한국의 워킹맘이 부러웠던 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흔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마음이 내려앉는 날은 여전히 있다. 그럴 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일찍 잠들거나, 동네를 한 바퀴 달린다. 완벽해지려 애쓰지 않는다. 하루란 다리를 오늘 무사히 건넜다면 충분하다고 나를 다독인다. 잘 살려고 애쓰는 그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나를 위해 움직인 것이기 때문이다.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저작권자ⓒ 아이틴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