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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한류이야기] 모니터 밖으로 나온 한류

기사승인 : 2026-03-05 12:58 기자 : 편집부

한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날 문득, “한국에 꼭 있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콘서트 소식이 전해지는 날일 수도 있고, 드라마 속에서만 보았던 골목의 불빛을 직접 걸어보고 싶어지는 밤일 수도 있습니다. 화면 속 장면이 현실의 좌표로 바뀌는 순간, 한류는 더 이상 감상의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행의 이유가 됩니다. 모니터 밖으로 나온 한류가 실제 발걸음을 움직이는 지금, 우리는 한국을 ‘보는 여행’과 ‘머무는 여행’의 차이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까요?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6년 1월 방한 외래관광객은 1,265,658명으로 전년 대비 13.3% 증가했습니다. 일본(+29%)과 중국(+14.9%)을 비롯해 대만·미국 등에서도 고른 증가세가 이어졌습니다. 숫자는 차분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드디어 한국에 왔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설렘이 쌓여 있습니다. 한류는 이제 화면 속에서 소비되는 문화가 아니라, 실제 이동을 이끄는 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왜 오는가에 대한 답도 분명합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1위는 ‘한류 콘텐츠 접촉’입니다. 사람들은 관광지를 체크하듯 둘러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 이야기 속 공간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어 한국을 찾습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았던 일상을 체험하고, 배달 음식을 주문해 보고, 편의점 앞 작은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한국의 밤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한류 관광의 중심이 ‘장소 소비’에서 ‘장면 체험’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부 역시 이러한 변화를 전략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5일 열린 확대 ‘제11회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3천만 명 시대’를 목표로 관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이 제시되었습니다. 관광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나선 장면은 상징적이었습니다. 다만 동시에 제기된 과제도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약 78~80%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한류가 한국으로 오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발걸음이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구조는 아직 충분히 설계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경험의 마찰’입니다. 해외 커뮤니티에는 “한국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어렵다”는 글이 반복됩니다. 한국인에게는 일상적인 서비스가 외국인에게는 휴대전화 번호와 본인 인증이라는 장벽이 됩니다. 너무 익숙한 시스템이 오히려 진입 장벽이 되는 순간입니다. 한류 팬들이 원하는 것은 기념사진이 아니라 한국의 하루를 살아보는 경험입니다. 작은 불편 하나가 여행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내국인의 고민도 같은 경험으로 나타납니다. “국내 여행은 비싸서 차라리 동남아로 간다”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제주도 숙박비를 보고 해외 항공권을 검색했다는 이야기, 강원도 호텔 가격이면 해외 패키지가 더 저렴하다는 후기가 이어집니다. 가까운 여행지보다 먼 나라가 더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외국인은 접근성에서, 내국인은 가격 신뢰에서 멈춘다면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같습니다. 여행을 오래 지속시키는 힘은 홍보가 아니라, 경험을 가로막는 마찰을 줄이는 데 있습니다.

특히 20~30세대에게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일상과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입니다. SNS에 기록할 수 있는 낯선 풍경과 새로운 리듬 속에 들어설 때 비로소 여행의 감각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더 멀리 떠나더라도 새로운 장면을 얻을 수 있는 해외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국내 여행이 경쟁해야 할 대상은 해외의 가격만이 아니라, 해외가 주는 낯설음과 새로움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관광 상품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한국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체류형 경험입니다.

모니터 밖으로 나온 한류 이후, 한국 관광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첫째, 한류가 만들어낸 방문 동기를 지역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서울 1~2박에 머무는 동선을 계절·축제·촬영지·로컬 체험과 자연스럽게 엮어 확장해야 합니다. 둘째,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살아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배달, 지도, 교통, 결제는 이제 관광 인프라입니다. 좋아하는 나라가 머물고 싶은 나라로 바뀌는 순간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오늘 저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같은 작은 편의에서 만들어집니다.

마음이 발걸음을 결정한다면, 이동과 비용, 편의는 그 발걸음을 오래 머물게 합니다. 세계인의 발걸음이 서울에서 멈추지 않고 전국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여정이 자연스럽고 편안해야 합니다. 한국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그 사랑이 “직접 가보고 싶다”로 바뀌는 순간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이 지역으로 이어질 때, 한류는 콘텐츠를 넘어 산업이 되고, 도시와 지역의 풍경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모니터 밖으로 나온 한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여행자가 편안하게 살아볼 수 있는 한국으로 그 다음 장면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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