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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하노이살이] 새해, 좋은 운을 만드는 법

기사승인 : 2026-02-20 14:50 기자 : 편집부

지금 우리는 날씨를 앱으로 확인하고, 주식 그래프, 환율, 물가 지표의 통계로 한해를 가늠한다. 데이터는 점점 정교해지는데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운을 묻는다. 옛날부터 우리는 내일이 가늠되지 않을 때, 간혹 운명이라는 단어에 기댔다. 조선시대부터 혼례 전 사주는 기본이었고, 이삿날은 손 없는 날을 골랐다.

때론 토정비결을 펼치고, 타로 한 장쯤은 재미로 뒤집어 보고, 올해의 별자리도 검색해 본다. 왜일까. 아마 인간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해가 바뀌면 아이들과 둘러앉아 타로 카드를 펼친다. “이건 무슨 뜻이야?” 하고 묻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해설자가 된다. 카드 한 장에 웃기도 하고, 애매한 카드가 나오는 순간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이런 말과 행동은 조심하래. 거봐, 엄마 말이 맞지?” 운을 빌려 잔소리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베트남 역시, 곳곳에서 운명을 묻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백화점을 낀 주상복합 건물이었는데,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가 이상했다. 3층 다음은 3A, 그 다음이 5. 4층이 없었다. 처음엔 버튼이 잘못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4는 죽음을 떠올리는 숫자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서도 4층을 F로 바꾼 호텔을 본 적은 있지만, 이곳은 아예 숫자를 지워버렸다. 불길함을 피해가고 싶은 마음을 층간 사이에 숨긴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1층 정문 밖, 한쪽에는 화로가 놓여 있었다. 남편의 현지 직원이 알려주길, 베트남에는 뭔가를 태워 보내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현지에서는 그것을 ‘돗방마(đốt vàng mã)’라고 부른다. ‘돗(đốt)’은 태운다는 뜻이고, ‘방마(vàng mã)’는 그때 함께 태우는 종이나 물건들을 말한다. 사람들은 종이돈, 옷, 집 모형, 심지어 자동차 모형까지 불에 올린다. 그렇게 태운 물건이 저승으로 건너가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노이에 도착한 첫해, 음력설을 앞두고 어학원에선 ‘리시’라 불리는 새뱃돈 뽑기 이벤트를 했다. 선생님이 빨간 봉투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와 말했다. “행복 머니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학생들은 차례로 봉투를 뽑았다. 나는 5만 동이 적힌 봉투를 받았다. 대부분은 3만 동, 어떤 이는 1만동. 우리 돈으로 500원 남짓이었다. 1만동을 뽑은 학생이 말했다. “제 복은 내년에 오려나 봐요?” 교실이 한바탕 웃음으로 흔들렸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설 이야기가 이어졌다. 선생님이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설 첫날엔 싸우면 안 돼요. 그 기운이 1년을 가요.” “빗자루질도 조심하세요. 복을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집이나 가게에 오는 첫 손님은 중요해요. 밝고 운이 좋은 사람이어야 해요.” 

어학원 직원이 장난처럼 덧붙였다. “설날에 그릇 깨뜨리면 최악이에요. 관계도 깨진대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했다. 나라가 달라도 새해에는 모두 조심스러워진다. 설날은 단순히 달력이 바뀌는 날이 아니다. 지난 시간과 새 시간이 교차하는 문이 열리는 날, 즉 한 해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하노이에서 설을 몇 번 보내며 다른 생각을 했다. 복이 정말 빗자루에 쓸려나갈까? 설날에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깨면, 그해 인간관계는 정말 꼬이는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색을 입어야 하는지, 누구를 먼저 만나야 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금기부터 찾는다. 이 모든 행위는 아마 조금이라도 좋은 운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운은 금기를 피해 다니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 쪽으로 향하지 않을까?

“화를 오래 붙들지 말 것.”

“부러움에 잠식되지 말 것.”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미루지 말 것.”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빼먹지 말 것.”

이런 다짐들을 부적처럼 가슴 안쪽에 붙여두고, 금기를 피해 다니는 대신 작은 습관부터 하나씩 바꾸어 간다면 어떨까. 우리가 두려워하는 불운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 슬그머니 복의 얼굴로 돌아설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올해, 하지 말아야 할 목록 대신 지켜보고 싶은 약속들을 하나씩 세어보기로 했다.

내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는데 성공했다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자리도 조금은 생길 것이다. 설날에 빗자루를 들지 않는 것보다, 누군가의 마음을 가만히 쓸어주는 일이 더 깊은 복을 부를지도 모른다. 내가 건넨 작은 친절 하나가 둥글게 돌아, 다음 설날 아침 초인종을 누르는 반가운 첫 손님으로 서 있을지도 모른다. 

사주가 길하다고 해서 행복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건 아니지만,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따뜻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이미 충분히 운이 좋은 날 아닐까.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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