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26-02-13 13:27 기자 : 편집부
하노이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생각보다 바빴다. 한인회에서 하는 유화 수업에 등록했고, 어학원에서 베트남어를 배웠으며, 한인 아줌마들과 골프 모임도 만들었다. 낯선 도시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안심을 얻고 싶어서였다. 일정이 비어 있으면 괜히 불안했다. 사람을 만나고, 수업에 나가고, 약속을 채워야 하루가 잘 굴러간 느낌이 들었다.

유화 수업은 모작으로 시작했다. 이미 완성된 그림을 따라 선을 긋고, 색을 얹는 방식이었다. 창작의 부담이 없어 붓을 들고 색을 칠하는 동안엔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뒤의 그 고요가 그렇게 좋았다.
베트남어 학습은 사실 취미라기보다 생존이었다. 시장에서 가격을 묻고, 택시 기사에게 도착지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 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면 문장을 완성하기는 커녕, 중요한 단어도 입안에서만 맴돈 적도 많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마다 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또렷이 자각했다.
골프도 잠깐 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나는 스윙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는 걸. 골프채와 골프옷을 고르는 데에 유난히 열심이었고, 필드보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결국 골프는 조용히 관뒀다.
몇 가지 취미가 스쳐 지나간 뒤, 가장 오래 남은 건 뜻밖에도 봉사였다. 어느 날, 한인 소식지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봉사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다섯 살 난 아들에게 한글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고 싶단 생각이 스쳤다. 더군다나 이력서를 요구하지도, 자격증을 묻지도 않았다. 그 점이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봉사 수업은 우리 집에서 이루어졌다. 기다란 원목 테이블이 놓인 거실 한가운데가 교실이 되었다. 한글 교재 대신 놀이를 통한 노출 위주의 수업이었다. 냉장고, 옷장, 침대, 텔레비전
등의 집안 물건에 한글로 쓴 이름을 써 붙였다. “냉장고라는 단어를 한번 찾아볼까?” “선생님, 가스레인지는 어떻게 써요?” 아이는 묻고, 우리는 함께 찾아 읽고 썼다.
어떤 날은 십자 블록으로 자음을 만들었고, 어떤 날은 과일 이름을 적어 빙고 게임을 했다. ‘가르친다’기보다 ‘같이 논다’에 가까웠다. 오늘의 목표는 글자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재미있었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방식이 나를 설레게 했다.
수업 시작 20분 전에 초인종이 울리던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우리 집에 공부하러 오는 게 신나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한글 교육에 열혈인 베트남 엄마들도 있었다. 아이 숙제를 파일에 정리해 오고, 프린트를 더 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나는 늘 “글자 한 자 더 쓰는 것보다, 집에서 한국말로 한 문장이라도 더 이야기해 주세요.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를 같이 보면서 ‘이건 무슨 뜻일까?’ 하고 물어봐 주세요.” 책상 위에 쌓이는 종이보다, 오가는 대화가 더 오래 남는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3년을 그렇게 보냈다. 아이들은 조금씩 글을 읽고 쓰게 됐다. 성과를 기대하며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생각지 못한 변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수업을 하는 날엔 다섯 살 아들도 늘 거실에 있었는데, 처음엔 옆자리에서 색연필을 굴리며 종이에 낙서만 했다. 수업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무… 을… 물?”
한베 가정의 아이가 읽던 글자를, 내 아이가 더듬더듬 따라 읽고 있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앉아서 시킨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관심을 받는 아이가 샘이 났던 건지, 글자가 궁금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부터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시작했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갖지 않았기에 오래 이어질 수 있었던 나의 오래된 취미, 한글 봉사. 덤으로 얻은 건 내 아이가 한글을 쉽게 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갖는 취미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선 선택지가 많고, 잘 갖춰진 공간이 있다. 커리큘럼이 체계적이고, 결과도 비교적 빠르게 확인된다. 봉사 활동 역시 활동반경이 넓고 규모도 크다. 반면 해외에서는 부족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교실이 없으면 식탁이 교실이 되고, 교재가 없으면 메모지가 교재가 된다. 속도는 느리지만, 관계는 깊어지고 성취감만큼 준비하는 과정도 중요해진다.
‘내일 수업은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아이를 만나기 전날 밤, 혼자 괜히 웃고 있던 나. 수업 준비를 하며 색연필을 정리하던 손. 그리고 반짝이던 아이의 눈빛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선생님, 오늘은 어떤 글자를 배울 거예요?”라고 묻던 아이의 질문은, 시간을 많이 건너온 나에게 이렇게 날아드는 것 같다. “선생님은 요새 무엇을 할 때 행복하세요?”라고. 다시 나를 조금 웃게 만드는 일, 오늘을 살짝 설레게 하는 일을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