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26-01-26 13:11 기자 : 편집부
미국 대륙의 핵심부에서 물류와 금융의 접점을 관리하며 대륙의 속도를 조율해온 시카고는 1871년 대화재라는 소멸의 흔적 위에 세워진 치밀한 설계도와 같다.

유행을 생산하기보다 이동과 집적의 효율을 극대화해온 이 도시의 태도는 현대 건축의 전형을 제시했으며, 오대호 연안의 지리적 요건은 경제적 가치가 필연적으로 맞물리는 환경을 마련했다.
이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징을 소비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가 어떤 논리로 유지되고 기능하는지를 읽어내는 과정이다.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냉기 섞인 기류를 맞으며 마주한 시카고는 차가운 금속성과 뜨거운 인간의 열망이 정교한 평행을 이루는 현장이었다.
'시카고 극장(The Chicago Theatre)'은 번영을 증명하며 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정표로 여정의 서두를 장식한다. 이곳을 지나 '시카고 리버워크(Chicago Riverwalk)'에 들어서면 도시의 기능적 기질은 명료해진다.
수직으로 적층된 건물의 투영은 업무와 휴식이 정교하게 교차하는 양상을 나타내며, 마천루의 숲은 자본과 기술이 빚어낸 계산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이는 풍경에 우선하여 이동과 효율을 기획한 도시의 맥락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는 도심의 통로로 기능하며 도시가 스스로를 투영하는 거대한 캔버스다. 나는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의 매끄러운 스테인리스 외피에 투영된 나 자신의 형상과 왜곡된 스카이라인을 응시하며, 도심과 관찰자 사이의 경계가 무던히 허물어지는 지점을 포착했다. 반사된 건물과 타인의 움직임을 목격하는 일은 사진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도시의 사용 논리를 드러내는 기제가 된다.
인접한 '크라운 분수대(Crown Fountain)'에서 송출되는 디지털 형상과 물줄기의 결합 역시 장식적 목적과는 별개로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공간의 성격을 규명한다. 투사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 젖어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철골과 유리가 주는 냉소적인 분위기를 일상의 생동감으로 변모시킨다. 시카고는 공공 공간을 소비의 장에서 탈피시켜, 일상이 통과하는 유기적인 지점으로 기획했다.
도시의 조형미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윌리스 타워(Willis Tower)'의 관점이 요구된다. 103층 스카이덱에서 내려다보는 시카고는 격자무늬로 정리된 정교한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투명한 유리 바닥 '더 렛지(The Ledge)' 위에 서서 지상 400미터 아래의 수직적 심연을 마주하는 일은 거대 도시를 지탱하는 역학적 위용을 체감하는 계기다.
발밑으로 펼쳐진 도로의 선형과 차량의 행렬을 보며, 시카고라는 유기체가 지닌 고도의 논리와 인위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했다. 이곳의 풍경은 웅장한 규모 이면에 존재하는 철저한 계산과 관리 하에 서 있는 도시의 실체를 대변한다.
시카고의 정체성은 식탁 위에서 완성된다. 열기가 감도는 피자집은 도시의 생동감이 응축된 장소다. 나는 무쇠 팬에 담겨 나오는 '딥디쉬 피자(Deep-dish Pizza)'를 마주하며 시카고가 지향하는 풍요와 시간의 깊이를 읽어냈다. 조리를 기다린 인내의 시간만큼 진한 소스의 향과 잔열은 나의 오감을 압도했다.
조각을 들어 올릴 때 하강하는 치즈의 풍성한 질감은 과시보다는 누적의 감각에 가깝다. 내가 신중하게 조각을 나누는 행위는 도시의 리듬에 동화되는 접근이며, 도우의 고소함과 토마토의 산미는 마천루의 긴장을 이완시키며 이면의 온기를 전한다.
시카고의 피자가 그러하듯 한국의 비빔밥 역시 지역의 물성과 태도가 투영된 결과다. 비빔밥이 재료의 조화로 미학을 보여주듯, 시카고의 피자 또한 강철의 수직성과 풍요의 열망이 빚어낸 언어다. 미각을 통해 포착한 서사는 공간의 논리를 수용하는 매개체가 된다.
시카고가 보여주는 수직적 논리는 한국 도심이 지향해온 고층화의 전형이기도 하다. 시카고 미술관에서 마주한 한국의 조형미는 철골의 위용과 대비되며 단단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마천루의 그림자 아래에서 설계된 구도와 진한 풍미를 수용하는 과정은 정교한 기획과 생동하는 호흡이 빚어낸 기록물을 읽어내는 일이다. 이 도시는 설계의 산물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호흡이 빚어낸 거대한 기록물이다.
/ 글·사진 ⓒ 이정미, 한국콘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여행 인플루언서 ‘기장아내 나두트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