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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석 청년정책] 청년에게 시간을 내어준 구미시

기사승인 : 2025-12-26 13:20 기자 : 편집부

한 도시가 청년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 도시의 미래 전략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다. 청년정책을 말할 때 의지와 구호를 앞세우는 도시는 많다. 그러나 도시는 결국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구조와 숫자로 남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이 질문에 비교적 분명한 답을 제시한 도시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산세바스티안이다.

산세바스티안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타바칼레라(Tabakalera)는 도시의 선택이 어떻게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1913년 가동을 시작해 한때 1,500명 이상이 일하던 국영 담배공장은 2003년 문을 닫았다. 많은 도시가 이 지점에서 철거를 선택한다. 그러나 산세바스티안은 달랐다. 이 공간을 허무는 대신 연면적 약 3만7천㎡ 규모의 창작 인프라로 재생했다. 현재 이곳은 매년 약 80만 명이 방문하고, 연 400~500명의 국내외 창작자와 연구자가 레지던시를 통해 체류하며 실제 작품을 완성하는 생산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단기 행사나 전시 위주의 지원이 아니라 작업실·제작비·시간을 함께 제공하는 체류형 지원이 핵심이었다. 이 선택은 산세바스티안을 2016년 유럽 문화수도로 이끄는 장기적 축적의 기반이 되었다.

이 사례는 자연스럽게 국내 지방도시의 청년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한 도시의 청년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성과를 설명할 수 있는 구조로 평가되어야 한다. 경북 구미시는 최근 몇 년간 이 기준에 비교적 근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지방도시 중 하나다. 핵심은 ‘청년을 위한 행사’를 얼마나 늘렸는지가 아니다. 청년이 머물고, 만들고, 다시 이 도시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축적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그 대표 사례가 2024년 개관한 구미청년 상상마루다. 구미시는 금오시장 3층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총사업비 약 8억 원, 연면적 1,081㎡ 규모의 청년예술·창작 거점을 조성했다. 개인 창작실 12실, 전시공간, 공동작업·휴게공간을 갖춘 이 공간에는 회화·사진·공예·디자인·웹툰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예술인 1기 12명이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운영 방향이다. 상상마루는 전시 중심의 소비형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연계 프로젝트, 시민 참여 프로그램, 관광기념품 개발로 확장되며 ‘창작에서 지역 연결’이라는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간 하나가 행정 시설을 넘어 도시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셈이다.

물론 단일 공간만으로 청년정책 전체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도시 차원의 전략이다. 구미시는 2024~2028년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청년도전지원사업, 고향올래, 저출산 대응 등 중앙정부 공모를 통해 국비 17억 원을 확보했다. 구미역 인근에는 고향올래 사업과 연계한 청년활동 거점 ‘Ground 9’ 조성이 추진되고 있으며, 워케이션·관광·청년 활동을 묶는 생활인구 유입 전략도 병행되고 있다. 청년정책을 단일 부서의 개별 사업이 아니라 주거, 일자리, 공간, 이동을 잇는 도시 단위 설계로 끌어올렸다는 점이 이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도 나타나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 25~39세 취업연령 청년 인구가 130명 순증했다. 대도시 집중이 고착화된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큰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지방 중소도시에서 청년 이동 지표의 반전 신호가 관측됐다는 점은, 정책 효과를 논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정착을 위한 제도적 장치 역시 구체화되고 있다. 2025년 구미형 청년월세 지원사업은 무주택 청년을 대상으로 월 최대 10만 원, 최장 24개월까지 지원한다. 금액의 크기보다 중요한 의미는 정책이 공식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구직단념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도전지원사업은 프로그램 참여 시 최대 350만 원 수준의 지원과 취업·창업 연계를 제공하며, 포기 이후가 아니라 포기 이전 단계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흐름은 다시 Tabakalera의 선택과 맞닿아 있다. 보조금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내어준 도시, 그 선택이 결국 도시의 체질을 바꾸었다. 이제 구미 청년 상상마루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전시 횟수나 행사 숫자를 넘어, 매년 몇 명의 청년이 구미에서 작업을 완성하고 다시 이 도시를 선택하는가를 성과 지표로 삼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구미 청년정책은 아직 완성형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간, 예산, 주거, 일자리, 이동 지표까지 수치로 설명 가능한 정책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도시는 청년에게 무엇을 주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게 했는가로 기억된다. 구미의 실험은 지금, 그 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 한국문학예술원 강이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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