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25-12-17 15:41 기자 : 편집부
서울의 국밥집과 성수동 카페에서 세계적인 셀럽들을 마주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설마?” 하고 두 번쯤 눈을 비볐을 풍경인데, 이제는 “아, 서울에 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지금 서울은 세계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을까요.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간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는 주로 “한국 스타가 세계로 나간 이야기”에 익숙했습니다. 누가 빌보드 차트에 올랐는지, 누가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는지에 박수를 보내며 한류의 성장을 체감해 왔지요.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 포착되는 풍경은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셀럽들이 서울을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직접 머물고 감각을 체험하는 여행지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레드카펫과 포토월을 벗어난 자리에서 이 도시는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몬스터〉로 잘 알려진 배우 샤를리즈 테론입니다. 그는 딸과 함께 성동구의 한 쿠킹 스튜디오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김밥을 말며 웃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늘 보아온 서울의 평범한 하루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레드카펫 대신 편안한 차림으로 서 있는 그 순간은, 서울이 더 이상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살아보는 도시’라는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세계에 전했습니다.
넷플릭스 〈퀸즈 갬빗〉의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의 서울 여행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그는 공식 일정 없이 남산 산책로를 걷고, 성수동 브런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한남동의 스파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서울이 관광지가 아니라 몸과 마을을 회복하고 쉬는 도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Z세대 배우 체이스 인피니티의 여행기는 더욱 솔직하고 가볍습니다.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서 시작된 서울 여행, 한강에서 라면을 끓이고 스카이워커를 타며 강변을 달리는 장면, 성수동 소금빵 가게와 올리브영, 익선동 카페를 오가는 동선은 지금 젊은 세대가 서울을 즐기는 방식 그대로입니다. 그의 사진 속 서울은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 팬덤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도시입니다.
이 흐름은 특정 인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이먼 페그가 가족과 함께 국밥집과 전통 공방을 찾고, 데이지 에드거 존스가 통인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먹고 인생네컷을 찍는 장면, 아이리스 로가 동네 베이커리와 국밥집을 ‘취향 지도’처럼 기록하는 모습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김치를 많이 먹었다”는 말이나, 슈퍼모델 이리나 샤크의 “Best 48h in Seoul”이라는 기록은 서울이 더 이상 낯선 문화 체험지가 아니라 세계인의 일상 감각 속으로 들어온 도시임을 보여줍니다. 카니예 웨스트가 일정 이후 체류를 연장해 가족과 함께 서울의 식문화와 공간을 즐긴 선택 역시 이 변화 위에 있습니다.
이들의 여행은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왜 이들은 굳이 한국까지 와서 김밥을 만들고, 한강에서 라면을 끓이며, 성수동 카페를 찾아다닐까요. 그 이유는 한국이 더 이상 “K-팝과 드라마의 나라”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의 무대”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10월 외국인 관광객은 1,582만 명으로 코로나 이전을 넘어섰고, 특히 유럽·미주 관광객은 30% 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행의 질적 변화입니다. 명동과 경복궁 중심의 동선에서 벗어나, 성수·연남·망원 같은 생활형 동네와 편의점 간식, 동네 베이커리, 한강 라면이 여행의 핵심 경험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일상이 곧 여행 콘텐츠가 된 시대입니다.
서울을 12번째 방문한 톰 크루즈의 메시지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찾으며 “한국 팬은 특별하다”는 말을 반복해왔고, 공항과 거리에서 팬들과 눈을 맞추는 모습은 늘 해외 언론과 SNS를 통해 확산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장면들이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관계의 밀도와 환대의 분위기를 함께 전했다는 점입니다. 서울은 이렇게 스타의 경험을 통해 다시 이야기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합니다. “한류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는가?”가 아니라, “한국의 어떤 일상이 세계인의 휴가가 되었는가?”를 묻는 쪽으로 말입니다. 서울은 지금, K-팝과 드라마의 배경을 넘어 세계인의 취향과 쉼이 만나는 라이프 스타일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카페나 식당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보세요. 어쩌면 스크린 속에서만 보던 해외 셀럽이 바로 옆자리에서, 우리와 같은 속도로 서울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조용한 장면 속에 오늘의 한류가 있습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