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25-12-16 12:42 기자 : 편집부
17,000개의 섬, 700개의 언어, 300여 개의 민족이 어깨를 맞대고 사는 나라, 인도네시아. 그 복잡한 색깔들을 한 폭의 무늬로 엮어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여성’이다. 그것도 학교 교단이 아닌, 밥상과 부엌,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교육을 이어온 엄마들의 손끝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고통 로용(Gotong Royong)”이라 말을 자주 사용한다. ‘서로 돕는 것’이라는 뜻이다. 집을 지을 때,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심지어 코로나19 방역 때도 이 말이 합창처럼 울려 퍼졌다. 그 중심엔 늘 여성들이 있었다. 쌀을 빻으며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나누며 마을의 평화를 지켜온 어머니들. 그들의 협동은 제도보다 오래된 민주주의였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의 교육이 단순히 따뜻한 마음에 기대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여아-남아 취학률 성비(GPI)가 0.89였던 나라가, 지금은 1.00으로 완전한 성평등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초등교육에서는 남녀 차이가 거의 없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학생의 진학률이 남학생을 추월한다. 도시 지역 여아의 95%가 중등교육을 마치는 반면, 외딴 도서 지역은 여전히 70%대에 머물러 있다.교육의 문은 열렸지만, 거리와 빈곤이 여전히 아이들의 미래를 가른다.
그래도 엄마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낮엔 밭에서 일하고, 밤엔 아이의 숙제를 본다. 종교학교에서 읽은 아랍어 구절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 설명하고, 모르는 문제는 함께 찾아본다.
“모르면 함께 배우자” — 이것이 그들의 가정교육 방식이다.
2021년 발표된 연구(Salam)는 여성 가구장이 남성보다 평균 15% 이상 자녀교육비를 더 투자한다고 밝혔다. 더 흥미로운 건, 딸에게 더 많이 쓴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신념이다.
“딸을 가르치면 한 세대가 바뀐다”는 신념은 국가의 정책보다 강한 교육 개혁을 원하는 엄마들의 결심에서 시작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보건부와 교육부가 함께 운영하는 ‘Parenting Education’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영양, 위생, 양육 태도, 아동 발달 등을 주제로 한 부모교육을 진행한다. 학교 밖에서 배우는 엄마의 교육이 교실 안의 아이를 바꾸는 셈이다.
인도네시아 엄마들의 교육은 늘 ‘감정’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아이에게 “공부해라” 대신 “평화를 지켜라”고 말한다. 경쟁보다 협동을, 지식보다 마음을 먼저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교육’, 인도네시아식 가정교육의 핵심이다.
그 감정은 예술로도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바틱(Batik)이다. 천 위에 왁스를 녹여 문양을 그린 후 염색하는 바틱은 단순한 직물이 아니라 명상의 행위다. 꽃무늬는 사랑, 물결무늬는 평정, 격자무늬는 질서를 뜻한다. 엄마들은 그 문양에 자녀의 이름을 숨겨 염색한다. “너의 인생도 이렇게 색을 입길 바란다.” 그래서 바틱은 옷이 아니라 ‘기도의 천’이다. 유네스코가 2009년 이를 “평화와 창조적 다양성의 상징”으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틱을 예술로, 교육을 해방으로 바꾼 여성이 있다. 라덴 아전 카르티니(Raden Adjeng Kartini). 19세기 말 식민지 시대 여성에게 글쓰기와 학습이 금지됐던 시절, 그녀는 “여성의 해방은 손끝에서 시작된다”고 외쳤다. 그녀가 그린 바틱 문양은 ‘빛의 길’이라 불렸고, 오늘날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매년 4월 21일 ‘카르티니 데이’로 기념된다. 아이들에게 배움의 빛을 물려준, 진정한 ‘어머니의 날’인 셈이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유엔여성기구는 “교육의 문은 열렸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기대와 조혼 문화가 여학생의 진로를 제한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저소득층 여학생의 평균 학업 연한은 남학생보다 0.8년 짧고, 10명 중 2명은 결혼으로 학업을 중단한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인도네시아의 교육 스타트업 창업자 중 40%가 여성이다. 신앙을 품고 기술을 배운 세대, 그들이 다음 세대의 교사가 되고 있다.
결국 인도네시아의 가정교육은 ‘가르침’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아이가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일이다. 그 교육은 교실이 아니라 부엌에서, 교과서가 아니라 밥 냄새 속에서 자란다. 아이들은 그 곁에서 ‘균형과 조화’를 배운다.
오늘도 인도네시아의 엄마들은 불을 지핀다. 그 불은 밥을 짓는 불이자 세대를 잇는 배움의 불빛이다. 그 온기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웃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수많은 섬이 이어져 하나의 나라가 되듯, 엄마들의 손끝에서 세상은 오늘도 다정하게 배움을 이어간다.
세계의 여성들에게 인도네시아 엄마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혼자 배우면 지식이지만, 함께 배우면 지혜가 돼요.”
/ 글·사진 ⓒ 임향숙, 폭스포럼 대표,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