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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한류이야기] 경주가 보여준 한류 확장의 새로운 방식

기사승인 : 2025-11-21 13:39 기자 : 편집부

2025년 11월, 천 년의 시간을 품은 경주는 다시 한 번 세계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월정교의 수상 무대 위로 불빛이 물결처럼 번지고,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21개국 정상이 신라의 시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시간도 국가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오래된 깨달음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순간은 ‘경주선언’이 채택된 일입니다. 이번 선언문에는 APEC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창조산업(CCIs)이 공식 의제로 명시됐습니다. “문화창조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문장은 경제·무역 중심의 APEC 의제에 문화산업이 중심 축으로 올라섰다는 상징적 선언이었습니다. 세계가 K-컬처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경제·외교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경주 APEC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한국의 수도가 아닌 지방 도시에서 열린 국제행사였다는 점입니다.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 도시들이 조용히 쇠퇴해온 현실 속에서, 경주가 세계 정상을 불러들인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메시지를 가졌습니다. 불국사와 첨성대, 황룡원 같은 유적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원형을 품은 장소이자, 한류의 깊은 백스토리입니다. 국제미디어센터 주변의 현대 건물과 경주월드의 롤러코스터가 유적지와 어우러지는 풍경 또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APEC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완성해주었습니다.

사실 한류 관광은 오랫동안 철저히 서울 중심이었습니다. 2023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103만 명 중 80%가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홍대·성수·명동이 K-팝과 K-뷰티의 성지로 떠올랐지만, 그만큼 지방의 문화 자원은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경주 APEC은 한류의 지도를 다시 그린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행사 기간 월정교에서는 한복 패션쇼가 열리고, 대표단은 한복·한식·한옥·한지·한글을 아우르는 ‘5한(韓)’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한지 예술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전시는 외신의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언론에서도 세계 정상들이 SNS에 한복 체험과 한옥 방문 사진을 올리며 “K-컬처가 회의장을 흔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프레시안은 외신 분석을 인용해 이번 행사를 “문화·기술·지역을 결합한 K-전략 외교의 모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이 문화와 기술, 그리고 지방 도시의 힘을 결합해 국제무대에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103만 명 중 약 80%가 서울을 방문하여, 한류의 세계적 인기에도 관광 수요가 특정 도시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홍대·성수·명동이 K-팝·K-뷰티의 성지로 자리 잡는 동안, 지방 도시의 풍부한 문화 자원은 오랫동안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주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경주였을까요?

경주는 단순히 고도(古都)가 아닙니다. 이곳은 세계 문화유산이 밀집되어 있으며, 첨단 산업벨트가 자리잡고 있는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도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문호에서 월정교로 이어지는 야관경관과 첨성대 및 불국사의 전통적인 모습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경제발전상과 전통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최적지였습니다. 이번 경주 APEC의 엠블럼 역시 신라천년의 미소가 담긴 수막새 기와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졌으며, 한국문화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APEC 회원국 및 지역의 한국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주는 이번 APEC 기간 동안 단순한 ‘관람의 도시’가 아니라 ‘행사의 주체’로 움직였습니다. 한옥 마을의 식당들이 외국인 고객 응대를 위해 자체적으로 메뉴판을 다국어로 개편했고, 택시 기사들은 경주 관광공사가 진행한 서비스 교육을 사전에 이수했습니다. 관광 소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생활 인프라가 국제행사를 기준으로 다시 정돈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번 APEC은 “서울에서만 국제문화행사가 가능하다”는 오래된 통념을 부드럽게 뒤흔들었습니다. 회의장 안에서는 정상들이 경제협력의 미래를 논의했고, 회의장 밖에서는 지역 기업·청년·시민들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 이어졌습니다. 경주는 이 행사에서 문화가 소비되는 장소가 아니라, 문화가 태어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경주의 성공은 부산·전주·광주 등 다른 지방 도시들에게도 길을 열었습니다. 각 도시가 가진 역사와 문화, 산업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세계로’ 향하는 한류 4.0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앞으로 다른 도시들도 자신이 가진 유적지, 지역 산업, 예술가 네트워크 같은 실제 자원들을 어떻게 국제적 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경주 APEC은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첫 장면을 분명하게 남겼습니다. 천 년의 도시가 던진 이 작은 메시지는, 어쩌면 앞으로의 한류를 바꿀 가장 큰 울림일지도 모릅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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