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25-10-17 13:32 기자 : 편집부
지방소멸의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도시의 활력은 결국 사람, 특히 청년이 머무는 생태계에서 비롯된다. 세계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MIT와 케임브리지가 이를 증명했다. 대학이 연구와 창업을 잇는 혁신의 허브가 되고, 도시는 이를 뒷받침하는 생활 인프라와 제도를 구축하면서 ‘지식과 기술의 순환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청년이 연구하고 창업하며 머물 수 있는 환경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 되었다. 이제 한국도 이러한 모델을 지역에 이식할 때다. 포항과 울산은 포항공과대학교(POSTECH)과 울산과학기술원(UNIST)를 중심으로 지역 산업과 청년 인재를 연결할 수 있는 혁신 클러스터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된다.

◆ 포항, 청년이 이끄는 도시 재생
한때 ‘철의 도시’로 불렸던 포항은 이제 ‘지식과 기술의 도시’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포스텍을 축으로 한 산·학·연 협력 기반의 도심형 혁신 클러스터가 있다.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약 700억 원 규모의 연구 클러스터 투자계획을 밝히며, 이차전지·바이오·반도체·수소 등 차세대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연구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포스텍은 단순한 대학을 넘어 도시 전체의 연구·창업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사례인 포스코 체인지업 그라운드(ChangeUp Ground)는 포스코·포항시·포스텍이 공동 운영하는 청년 창업·연구 허브다. 기술 실험부터 사업화까지의 전 과정을 한 공간에서 지원하며, 2024년 기준 누적 창업기업 150여 개, 총 투자유치액 800억 원을 달성했다. 여기에 한동대학교가 사회혁신과 교육을 결합한 창업 모델을 확산시키며, 포항은 기술 창업과 사회적 창업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포항시는 스위스 바젤대학교와 협약을 체결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연구성과가 글로벌 경쟁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청년 연구자들은 국제 공동연구와 창업, 인턴십 기회를 얻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모든 변화의 중심에 청년이 있다는 점이다. 포항시와 포스텍은 매년 100명 이상의 지역 청년을 대상으로 AI·소재·로봇 분야 단기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우수 인재를 창업보육센터와 연계해 취업 또는 창업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는 단기 일자리 창출을 넘어 지속 가능한 경력 경로를 만드는 전략이다.
◆ 울산, 청년 기술로 만드는 산업 도시
울산은 대한민국 제조산업의 심장이다. 그러나 조선·자동차·석유화학 중심의 산업 구조는 탈탄소·AI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유니스트는 대학과 산업의 협력을 넘어, 도시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유니스트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 산업 맞춤형 인재양성을 목표로 했으며, 지금은 이를 넘어 청년 기술창업과 연구기업 육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대학 내 창업보육공간에는 매년 100여 개 팀이 입주하고 있으며, 2024년 기준 누적 투자유치액은 약 1,2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수소에너지, 친환경 모빌리티, AI 반도체 분야에서 청년 창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창업이 아니라, 울산의 산업 생태계와 연계된 산업 구조 혁신형 창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울산시는 유니스트와 협력해 ‘지·산·학 일체형 청년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학 연구를 기반으로 한 창업팀이 지역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시가 직접 사업화 자금을 매칭해주는 구조다. 2023년에는 37개 청년 연구팀이 지역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평균 2억 원 규모의 R&D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청년 주도형 산학연 협력은 산업단지 중심의 경제 구조를 혁신하는 실험으로 평가된다.
◆ Univer+City, 대학과 도시가 함께 걷는 길
포항과 울산의 대학들은 ‘유니버+시티(Univer+City)’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있다. 2016년 시작된 이 협력에는 포스텍, 유니스트, 한동대, 울산대 등 지역 대학과 지자체, 기업이 참여해 R&D 협력과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확대해왔다. 그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이 있다. “청년이 머무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결국 지방의 경쟁력은 산업이 아니라 사람, 특히 청년에게서 나온다. 포항과 울산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포스텍과 유니스트가 중심이 되어 연구·산업·창업이 하나로 연결될 때, 도시는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엔진이며, 청년이 머물고 배우며 창업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특구 지정, 청년 R&D 펀드, 창업-정주 연계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MIT와 케임브리지가 ‘지식의 순환’으로 도시를 되살렸듯, 한국의 지방 도시도 ‘청년의 순환’을 통해 지역을 새롭게 일궈갈 한국형 모델로 자리하기를 기대한다.
/ 한국문학예술원 강이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