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25-10-16 15:02 기자 : 편집부
베트남 남중부 해안에 자리한 나트랑(Nha Trang)은 ‘햇살의 도시’라 불린다.

1년에 300일 이상 해가 비추는 이곳은 바다와 산이 맞닿은 지형 덕분에,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자연의 선이 아름답다. 푸른 수평선과 초록빛 능선이 만나는 곳, 그 경계 위에 도시가 고요히 놓여 있다.
이번 여행은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기로 한 여정이었다. 나는 여행 루트를 ‘나트랑성당 → 포나가르 참 사원 → 혼총 → 롯데마트 → 나트랑 시내’로 잡았다. 하루의 흐름을 따라 걷는 이 코스는 나트랑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행자의 일상을 동시에 품고 있다.
호텔 조식 후 첫 목적지는 나트랑 대성당(Nha Trang Cathedral). 고딕 양식의 회색 석조 건물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아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종탑의 시계와 첨탑이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입구 옆 종려나무 잎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문 앞에는 미사를 마친 현지 여성이 한 명 보였고, 그녀의 발걸음은 조용하고 단정했다.
이곳에서 느껴진 것은 종교의 경건함보다는 삶의 리듬이었다. 사람들은 기도 후 시장으로, 직장으로 향하며 평온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신앙이 일상에 스며든 도시. 그 단정한 풍경이 오히려 여행자의 마음을 고요히 정돈시켰다.
성당을 나와 택시로 10분 남짓 이동하면 포나가르 참 사원(Po Nagar Cham Towers) 이 나온다.
그 여운을 안고, 나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고대 참파 왕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지 포나가르 참 사원. 나는 천천히 사원의 붉은 탑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도시의 시간에 내 박자를 맞추는 일”이라고.
7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지어진 이 사원은 붉은 벽돌의 결마다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돌기둥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참파 왕국의 흔적이 남긴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까이 강(Cai River)과 바다는 사원의 적갈색 벽돌과 대조를 이루며 푸른 숨결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향을 피우는 여성의 손끝, 바닥에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 주변에 머문 바람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졌다.
이곳은 오랜 시간의 기도가 스며든 공간이며, 과거와 현재가 조용히 공존하는 풍경 속이었다. 사원 위에서 내려다본 까이 강은 여전히 잔잔했고, 나는 그 순간, 나트랑이라는 도시가 한 겹 한 겹 시간의 결을 품고 있는 곳임을 느꼈다.
사원에서 나와 해안가의 명소 혼총(Hon Chong)으로 향했다.혼총은 나트랑 여행의 감성을 완성시키는 장소다.
파도와 바위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낮은 울림, 그 위의 작은 카페에서 마신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베트남 커피는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차가운 단맛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다.
이곳에서는 매일 현지 악사의 전통 현악 연주가 열린다.그날도 잔잔한 선율이 단조로우면서 따뜻하게 바람을 타고 이어졌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한 문장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나트랑의 바다는 음악처럼 흐른다. 빠르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도 않고.”
그 한 시간은 특별한 계획도 없이 머물렀던 시간이지만, 오히려 이번 여행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곳의 바다는 단지 풍경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던 삶의 리듬을 다시 맞추는 공간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롯데마트 나트랑점.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이었다. 한국어 안내문과 K-브랜드가 현지 상품들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현지인들에게는 생활의 중심지로 진열대에는 베트남 전통 간식과 한국 브랜드 상품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글로벌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국경을 넘어 흐르는 문화의 교차점, 그것이 나트랑의 현재였다. 나는 현지 커피와 드립백, 그리고 전통 과자 몇 봉지를 기념품으로 샀다.
마트 안,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물건을 고르고 정리하는 손길이 이어졌다.그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우리 동네 시장을 떠올렸다.
“삶의 방식은 달라도, 살아가는 리듬은 닮아 있다.”
그 순간, 여행의 본질이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다른 삶의 호흡을 배우는 일’ 이라는 걸 깨달았다.
해질녘, 도로변의 야자수 잎 사이로 붉은 노을이 스며들었다. 나는 시내의 베트남 현지식 레스토랑에 앉아 분짜(Bún chả)와 쌀국수(phở를 주문했다. 불향이 스며든 고기와 라임 향의 소스, 그리고 따뜻한 육수의 깊은 맛이 하루의 피로를 천천히 녹였다.
식사 후에는 나이트 마켓을 천천히 걸었다. 코코넛 향기, 사람들의 웃음소리, 조명 아래 반짝이는 수공예품들. 이 모든 풍경이 하나의 필름처럼 마음속에 찍혔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를 걷는 밤길,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걸으며, 이 도시의 박자에 몸을 맡겼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스파, 따뜻한 타월의 온기와 오일 향, 그리고 조용한 음악이 하루를 부드럽게 감쌌다. 몸의 긴장이 풀리자 마음도 느슨해졌다.
“좋은 여행의 끝은 화려한 일정이 아니라, 조용한 회복이다.”
나트랑 여행은 한마디로 느림의 철학을 가르쳐준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잠시 남은 시간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바람은 여전히 따뜻했고, 파도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 평온한 반복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여행은 결국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라는 것을.
기장아내로서, 그리고 여행작가로서 나는 늘 ‘속도’를 다르게 본다. 세상은 빠르지만, 진짜 여행은 느리다. 나트랑은 그 느림을 배울 수 있는 도시다. 하루의 코스가 끝날 때쯤, 나는 어느새 마음이 비워진 대신 다시 채워져 있었다.
여행은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된다.나트랑의 마지막 장면은 화려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한 바다와 저물어가는 햇살, 그리고 미소 짓는 사람들.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확실히 느꼈다.
“빨리 걷지 말자.”
느림 속에서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그 느림이 내 인생의 다음 여정을 부드럽게 이끌 것이다.
/ 한국콘텐츠개발연구원 이정미 이사장, 네이버 여행인플루언서 ‘기장아내 나두트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