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아이틴뉴스칼럼

HOME > 칼럼

[강이석 청년정책] 영국 발틱 미술관을 꿈꾸는 폐항의 부활

기사승인 : 2025-09-24 18:22 기자 : 편집부

도시가 산업 변화로 쇠락했지만, 청년이 참여할 때 다시 뛸 수 있다. 그 증거가 20년간 방치된 제분공장이 2002년 현대미술관으로 부활한 영국 발틱 미술관이다. 총 5천만 파운드가 투입된 재생 과정은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었다. 개관 첫 주 3만5천 명이 몰렸고, 누적 1천만 명을 돌파했으며, 2011년 터너 프라이즈 전시로만 14만9천 명을 끌어모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진짜 힘은 화려한 전시가 아니라 청년의 손길이다. 발틱은 전시장, 전망대, 레스토랑, 도서관, 교육실을 열어 청년 작가와 대학생이 실험하고 머무는 레지던시를 운영한다. 매년 1,200명의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곳은 예술을 관람의 대상에서 삶과 직업의 길로 바꾸는 거점이 되었다.

◆ 공장과 소각장의 작은 부활

해외 사례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폐산업시설을 문화예술로 되살린 모델이 속속 등장했다.

국내 최대 카세트테이프 공장이던 쏘렉스가 25년간 방치되다 2018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대지 1만3천㎡ 규모의 부지에는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카페, 다목적홀, 교육 공간이 들어섰고, 국내외 예술가들이 입주해 창작과 전시를 이어가며 시민과 청소년 대상 예술교육도 활발하다. 공장 소음이 끊긴 자리에 이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청년 예술가들의 음악이 울린다.

경기도 부천의 아트벙커 B39는 1995~2010년 가동된 쓰레기 소각장을 개조한 사례다. 다이옥신 문제로 문 닫은 소각장이 2018년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났다. 높이 39m의 벙커와 소각로를 그대로 두고, 그 공간을 공연·전시·영화촬영·MICE 행사로 바꾸었다. 한때 ‘혐오시설’이던 공간이 이제는 도시의 문화 브랜드가 된 셈이다.

청주 동부창고 역시 담뱃잎 보관창고 7개 동을 리모델링해 시민문화 거점으로 만든 곳이다. 교육관, 전시장, 이벤트홀, 공연장, 생활문화센터로 탈바꿈하며 국제공예비엔날레 개최지로도 활용된다. 창고의 낡은 벽돌이 이제는 청년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사례는 폐산업 시설이 청년과 시민의 참여로 다시 도시의 심장으로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군산과 목포가 꿈꿀 미래

군산 내항은 2018년 국가등록문화유산 제719호로 지정되며 152,476㎡가 보존됐다. 관광객은 2011년 570만 명에서 2019년 1,641만 명으로 급증했다. ‘시간여행축제’는 매년 15만 명 이상, 2024년에는 25.5만 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거대한 창고와 부두는 일부 행사에만 쓰이고, 밤이면 불 꺼진 공간으로 남아 있다.

목포 구항만도 마찬가지다. 2019년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뒤 총 2,237억 원(국비 430억, 지방비 1,807억) 투입 계획이 마련됐다. 해상케이블카는 2025년 2월까지 400만 명이 이용하였고, 근대역사관도 매년 수십만 명이 찾았다. 그러나 항만 공간은 여전히 전시·체험에 머무르며 청년 주도의 창작 거점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이 두 도시는 이미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와 거버넌스이다. 현재 문화재생은 지자체와 기관이 주도하고, 청년은 소비자나 참가자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청년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할 권한을 줘야 한다. 군산의 창고 한 동을 ‘청년예술 허브’로 지정하거나, 목포의 수변을 청년이 직접 기획한 미디어아트와 라이트 쇼로 상설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재원 구조가 약점이다. 발틱은 복권기금, 유럽개발기금, 지방정부, 민간 기부 등 다원적 구조였지만, 국내는 국비·지방비 의존도가 높다. 군산과 목포도 ‘예술 창고 펀드’를 조성하여 지역 기업과 청년 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하는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예산이 아니라, 청년의 상상력이다. 그들이 직접 공간을 설계하고 운영할 때 진짜 재생이 시작된다.

마지막 과제는 연결성이다. 게이츠헤드는 발틱 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 세이지 콘서트홀, 엔젤 오브 더 노스와 함께 ‘퀘이즈’라는 문화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군산도 내항과 근대거리를, 목포도 구항만과 원도심을 교통·보행 동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지금처럼 고립된 공간으로는 체류형 관광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간이 연결될 때, 사람의 발길도 머문다.

◆ 청년이 만드는 두 번째 생명

쇠락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미래가 달라진다. 변화된 도시의 중심에는 늘 청년과 시민의 참여가 있었다. 군산과 목포도 다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규모 예산이 아니라, 청년과 예술이 만드는 상상력이다. 발틱이 곡물공장에서 예술공간으로 다시 뛴 것처럼, 한국의 항만도 청년 세대의 무대가 될 때 비로소 진짜 재생이 시작된다. 그날, 군산과 목포는 더 이상 ‘옛 항구 도시’가 아니라, 지방 소멸 위기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도시 모델로 기억될 것이다.

/ 한국문학예술원 강이석 원장

[저작권자ⓒ 아이틴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